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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상도

대구근대로의 시간여행지 대구근대역사관

 

 

 





  대구근대로의 시간여행지 대구근대역사관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내리면 경상감영공원과 그 옆에 있는 대구근대역사관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932년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된 대구근대역사관 건물은


해방이후 1954년부터 산업은행으로 사용된 근대역사의 문화유산입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역사건물로서


보존도 잘되어 2003년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 4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11년 1월에 문을 연 대구근대역사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건물로서


대구의 역사와 전통, 문화등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지은지 80년이 넘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 흐트러짐없이 굳건하게 서 있는게


부실한 요즘 건물들과 너무 비교되는 것 같습니다.

























동선을 따라 들어가면 1층과 2층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곳이라 천천히 봐도 1시간이면 충분한 박물관입니다.















@대구근대로의 시간여행지 대구근대역사관












은행으로 사용된 건물이라 그런지 관련된 전시물들이 많았습니다.


들어가자 마자 옛날 화폐와 주판 그리고 금고등을 볼 수 있습니다.























- 대구 근대역사관 옆에 있는 경상감영공원의 옛 모습 -




지금은 선화당과 징청각 그리고 몇개의 비석만 남아 있는데


그때 당시에는 대다한 위용을 보여 줬을 것 같네요.













- 관풍루 잡상 -


경상감영 정문의 누각인 관풍루의 기와 지붕 장식물















-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 대구 -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기 위한 방편으로


강제로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게 해서 빚을 지게했죠.




차관으로 들어온 돈은 일제침략을 위한 투자와 일본인들의 거주지를 건설하는데 들어갔는데


이로인해 우리나라 경제는 파탄에 빠지게 됩니다.


1907년 한국정부가 짊어진 외채는 총 1,300만원이나 되었는데


이때당시 한해 정부예산은 매년 77만원의 적자를 보고 있어


일본으로 부터 들여온 외채를 갚을 능력은 없었습니다.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서상돈, 김광제, 박해령을 비롯해 16명이 모여 활동하여


국내는 물론 해외유학생들까지도 호응하여 많은 돈을 모금하였지만


일제와 매국단체인 일진회의 탄압으로 진전되지 못하고 중도에 좌절되었습니다.























625전쟁당시 최후의 저지선이었던 낙동강과 방어지 대구












대구에서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시 전문지 '죽순'























































마를린먼로가 한국에 온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




625 전쟁당시 미군을 위로하기 위해 대구 비행장에 마를린몬로가 왔다고 하네요.


세계적 대스타가 전쟁통인 우리나라에 왔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네요.













1층과 2층으로 연결되 계단이 있지만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이동하게 됩니다.











대구 근대역사관이 있는 주변에는 경상감영공원과 약령시한의원, 계산성당등


대구 근대 골목투어를 할 수 있는 유적지들이 모여있습니다.













2층에는 주로 한국 근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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